샤인(Shine) 1996년 호주 드라마

감독 스콧힉

출연진 제프리 러시 노아 테일러 아르민 뮐러슈탈 

 

 

 

첫인상

 파란 이어폰을 귀에 꽂은 남자는 커피가 섞인 크림색 바바리를 입고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체 하늘을 향해 뛰고 있었다. 샤인이 머릿속에 심어준 첫 장면이다. 첫 이미지가 중요하다는 말이 흔한 돌멩이가 되어버렸지만, 그 가치만은 돌멩이에 머물지 않을 터이다. 샤인의 그런 첫인상은 내게 성공적이었다. 사회는 분명 바바리만 입고 날뛰는 사람을 미친 변태라 했다. 어디로 표출 해야 할지 모르는 분노, 그 과녁으로 더없이 좋은 사회에게 또 한 번의 화살을 날리고 싶은 걸까. 이상하게도 괴상하게도 다르게도 그 장면을 본 후 샤인이라는 영화는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스치듯 본 예고편에 매료되어 결국 샤인을 봤으니 예고편 제작자는 무척이나 자기 일을 잘하고 있음에 확신을 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거기에 샤인을 찍은 카메라 감독부터 컷을 구상한 총감독, 이 영화에 관계되어 일한 분들에 땀이 제값을 했다는 걸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그렇다고 샤인, 이 영화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것은 아니다. 빠르고 과격한 할리우드 영화에 길들 대로 길든 사람이 느리고 덜컹거리는 오래된 차에 올라 정적인 풍경을 감상하려면 내면 친구들 중에서도 덩치가 럭비선수만 한 '참을성'을 사귀어야 했다. 다행히 친하진 않아도 그런 친구가 몇 명 있다.

 

 

 

 

라흐마니노프 3번 곡

 샤인에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가 가진 특유의 다큐가 생생히 묻어나왔다. 가족관계, 사제관계, 연인관계 그렇게 사람과 사람 그리고 피아노, 그 속에서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을 중심점으로 흘러든다. 샤인속 파크스 교수의 말에 의하면 "라흐마니노프 3번은. 불멸의 곡이야! 미치지 않고서야 이 곡을 연주할 수는 없네!" 라 할만한 어려운 곡이었다. 주인공인 데이비드 헬프갓도 이 곡 이후로 일반인의 길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같은 말을 빠르게 반복하며 더듬거리게 되었다. 피아니스트의 무덤이라 할만한 곡을 데이비드 헬프갓은 왜 매달렸을까. 그는 재능있고 피아노에게 성실하기까지 했다. 그에 손에 연주되길 바라는 곡들을 모아놓으면 데이비드 삶에 끝나기까지 반은 연주할 수 있을까. 운명과 필연이라 할까. 라흐마니노프 3번 곡은 데이비드 헬프갓에게 어릴 때 만난 유니콘, 피아노 해안에서 그의 아버지와 함께 항해해가는 목적지였다. 비록 아버지의 과한 집착이 둘을 갈라서게 되었지만, 아버지를 향한 데이비드의 마음이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 마음, 사랑은 변했지만, 데이비드는 항상 아버지를 사랑했었다.

 

 

 

소망의 끝에는

 가족과 연을 끊고 영국 왕립음악원에 들어서서도 데이비드는 라흐마니노프 3번 곡 끝에서라면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지만, 데이비드에게 피아노와 라흐마니노프 3번 곡은 곡예사가 오르는 외줄보다 위태로운 단 하나의 선이었다. 데이비드가 그 끝에 가족이 아닌 병을 얻은 건 피아노를 칠 때 영혼의 일부분을 심지로 태웠기 때문이 아닐까. 하얀 증기를 뿜으며 앞으로 나가는 기차에는 석탄이라는 연료가 있지만, 데이비드에게는 가족과 연이 끊기면서 남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원래는 애정을 태워 두드려야 할 건반을 그는 맨 몸뚱어리 하나로 버티며 그 속에 껍데기처럼 남은 본질을 불쏘시개로 아버지와 자신의 소망이 깃든 곡을 완주했던 것이 아닐까.

 

 

 

 

데이비드의 변화

 데이비드의 마음이 변했다는 건 피터 헬프갓의 바이올린 이야기에서 알 수 있었다. 데이비드의 아버지 피터는 항상 그에게 이야기한다. 자신은 바이올린을 켜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았다고 자신의 아버지가 바이올린을 어떻게 했는지 데이비드에게 묻는다. '바이올린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니?' 어릴 적 아버지를 맹목적으로 따르던 데이비드는 항상 이렇게 대답했다. '네 알아요. 박살 나버렸죠.' 강인하고 자신감 넘치는 아버지에게 기대어 항해해 나가던 순간엔 아버지를 선장으로 지평으로 등대로 굳게 믿었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아이작 스턴이 미국 유학을 제의해도 아버지의 반대 하나에 포기했다. 두 번째로 다가온 영국 왕립음악원 입학 기회도 아버지가 반대했지만, 이번에 데이비드는 떠난다. 가족 간의 관계를 모두 끊고 가라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도 그는 떠난다. 데이비드가 떠난 이유엔 아버지에 대한 믿음이 깨진 데 있을 것이다. 1등과 살아남는 것을 강박적으로 주입받은 데이비드는 아버지의 말에 따라 수많은 피아노 경합에서 수상해오다 미국 유학 제의를 거절한 후 경합에서 1위 자리를 뺏기게 된다. 그 실패가 불신의 시작이 되어버렸다. 영국 왕립음악원에서 홀로 공부하다 라흐마니노프 3번 곡을 연주하고 병을 얻었을 때도 아버지는 찾아오지 않았다. 데이비드가 아버지와 재회하는 순간은 레스토랑 2층에서 이루어진다. 레스토랑에서 연주자로 지내는 데이비드를 다시 찾은 피터는 또다시 자기 아들에게 묻는다. '바이올린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니?' '아니오. 몰라요.' 이 대답을 듣고 피터는 홀로서기에 성공한 데이비드를 온전히 보게 되고 슬픔과 자랑스러움 쓸쓸함을 들어내며 돌아서 레스토랑을 떠난다. 데이비드는 가족의 품을 스스로 떠나 불안했고 위태로웠다. 연주하다 병까지 얻었다. 그럼에도 자신을 들어내는 데 성공해 아내와 더불어 자신을 받아주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끝내는 다시 피아니스트로서 삶을 이어가게 되었다. 더욱 성장한 피아니스트로서 많은 사람 앞에 섰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