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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멜로 영화] 하프웨이 리뷰 및 결말 Halfway (ハルフウェイ)

하프웨이 영화의 리뷰 및 결말에 스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일본 멜로 영화는 아름다운 영상미와 잔잔한 여운이 매력적인데요.

고등학생들의 풋풋하고 달달하면서도 현실적인 연애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하프웨이에 대해 소개할게요.

키타가와 에리코라는 일본 여감독의 첫 영화 작품으로 원래는 대사가 정해진 대본이 있었으나, 남녀 배우의 캐미가 너무 좋아서 대사의 대부분이 애드리브로 진행되었어요.

남자 배우는 오카다 마사키, 여자 배우는 키타노 키이가 맡았는데 영화 후반의 함께 공부하는 씬에서 여자 배우인 키타노 키이가 도중이란 뜻을 갖고 있는 영어 단어인 "Halfway"를 "하루프웨이(ハルフウェイ)"로 잘못 읽으면서 일본 영화 실제 제목인 하루프웨이(ハルフウェイ)의 유래가 되었죠.

두 배우들의 대사와 행동이 애드리브로 진행되어서 실제 연인과 같은 애뜻함과 달달함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달달한 연애 속에서 남자가 대학을 도쿄로 진학하고 싶어하고, 도쿄로 보내지 않고 같이 있고 싶어하는 여자 사이의 갈등이 있죠.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기차 역에서 여자가 남자를 도쿄로 보내는 장면이 나온 후에 남자의 과거 회상 장면이 나오는데요.

여자와 남자가 서로 드럼을 두들기면서 발표를 하죠. (남자 : 슈, 여자 : 히로)

여자 : 발표합니다. 슈는 나를 좋아한다.

남자 : 히로는 나를 좋아한다.

여자 : 도쿄에 안 갔으면 좋겠어요. 안 갔으면 좋겠어요.

남자 : 두구두구두구 (드럼을 두드린다)

여자 : 네?

히로(여자)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이고 슈(남자)의 답변 없이 영화는 막을 내리죠.

슈는 도쿄로 가기로 정했고, 결국 히로와 슈는 헤어졌을 거라고 생각되어지죠.


사실 이 영화는 10대의 풋풋하고 애뜻한 연애 이야기로 첫 사랑을 생각하게 해주고 단순하고 단조로운 이야기 진행인 방면에 많은 생각을 해주게 해요.

남자는 꿈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며 여자 또한 사랑과 남자의 꿈 사이에서 갈등하죠.

영화 속에서는 남자가 여자를 위해 한차례 꿈을 포기하지만 마음을 다 접지 못하고 결국 자신의 꿈을 향해 나가기로 결정하죠.

여자는 남자와 함께 있고 싶어 남자의 꿈을 포기하게 하지만 결국 남자의 꿈을 응원하고 지지하게 되죠.

많은 이들이 이와 비슷한 연애를 해본 적이 있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꿈과 사랑 속에서 많은 고민과 갈등을 해 본 사람, 하는 사람 모두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영화이지 않나 싶어요.

 

 

집 나갔던 아들이 돌아왔습니다!

아들이 톰 홀랜드이라서 존잘이네요.

 

 

이런 아들이면 얘를 낳고 와도 반기죠.

아니 사실 토니 맥과이어 아들 아닌가요.

 

 

둘이 엄청 닮았네요.

이번 스파이더맨 홈커밍 핵심입니다!

마치 오리지널 스파이더맨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오는 주연배우의 닮음부터 예사롭지 않습니다.

다만 톰 홀랜드 싱싱함 때문인지 찌질한 학교생활 연기를 해도 찌질해 보이지 않더군요.

살짝 아쉬웠습니다. 찌질하지 않은 스파이더맨이라니ㅋ

톰 홀랜드의 연기가 어설펐더가나 나빴다는 게 아닙니다. 존잘 배우에게 찌질한 연기를 시키는 감독이 나쁜거에요. 원작가가 잘못했네요.

톰 홀랜드를 보자니 바다 건너 해리포터에 대니얼 래드클리프이 생각났습니다.

어린 아역배우때부터 해리포터 시리즈를 찍으며 성장하는 모습도 같이 볼 수 있었는데

 

이번 홈커밍한 스파이더맨을 보니 톰 홀랜드도 시리즈를 이어가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졌습니다.

 

마음에 들어! 톰 홀랜드! 칭찬해!

 

 

 

 

이번 스파이더맨의 두번째 핵심 슈트입니다. 이번 존 와츠 감독이 오리지널 스파이더맨의 인기와 성공비결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고 찍었는지 오리지널에서 보았던 장면들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갈라지는 배를 막는 장면을 보시죠.

 

 

어디서 많이 보지 않았습니까? 잘모르겠다는 분들은 아래 장면을 봐주시면 됩니다.

 

이건 2004년 개봉했던 스파이더맨2, 기차에 승객을 구하려는 모습입니다. 똑같죠? 다르게 보이면 안과 안가?

이렇듯 지난 날의 오리지널 스파이더맨의 설정과 장면들을 2017년에 새로 개봉한 영화에 재탕하는데 이미 봤던거 봐서 지루하거나 따분할까요.

NoNo~ 박수가 절로 나왔습니다. 집나간 아들이 돌아온 기분 그대롭니다. 여기서 슈트가 부각됩니다.

영화의 장면과 설정이 그대로니 존 와츠 감독은 어떻게 관객들에게 신선함을 줄까 고민한 티가 납니다.

 

얼마나 기발한 슈트가 나오는지는 영화에서 집적 확인 바랍니다.

세번째 핵심입니다. 히어로의 성장 스토리! 이번 스파이더맨은 아직 어립니다. 배역을 맡은 톰 홀랜드 또한 어리죠. 그러다 보니 이번 홈커밍의 전체적인 플롯과 너무도 어울렸습니다.

고난을 이겨내고 더욱 성장한다. 크 바람직합니다. 좋아요 좋아요.

 

 

 

 

아래줄 만 보실 분들을 위한 세줄 요약.

1. 오리지널 스파이더맨과 이번 스파이더맨 배우는 매우 닮았다.

2. 오리지널의 내용과 다를게 없지만 그런거 하나도 안중요하다.

3. 톰 홀랜드 배우의 성장 히어로! 해리포터 처럼 앞으로 꾸준히 보고 싶다.

 

 


추억의 마니 (지브리 스튜디오,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 2015년 6월 5일(미국) |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 전체관람가 | 스튜디오 지브리 |


 반갑습니다오늘 제 삶에 중요한 영화를 보고 왔습니다. '추억의 마니사실상 지브리의 마지막 작품이네요영화에 대해 쓰기 전부터 안구에 습기가 차서 바보 같습니다. 사랑하는 지브리. 따뜻한 색체와 인간적인 캐릭터로 가슴을 녹여주던 영화는 이제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걸까요.

 

 여러분은 운명을 믿나요? 319,  생에 처음으로 운명을 느꼈습니다. 원인과 결과를 따지기 좋아하는 저에게 운명이라면 미지의 섬 소코트라 같은 곳인데, 오늘 그곳에 다녀온 기분입니다대게 영화의 히로인들이 운명에 대해 말하면 공감하기 어려워 미간에 주름을 긋는 사람 중 한 명이 저였던 게 틀림없습니다. 아직도 기분이 묘합니다. 분명 할 일이 있었는데도 발걸음이 영화관으로 가다니 거기엔 20:00 상영 추억의 마니가 있었습니다. 핸드폰을 보니 19:57. 머릿속으로 ', 어서 표를 예매해'라는 환청이 들리는 듯 했어요.


 파란 표지에 하얀 선으로 그려진 토토로가 인사를 건네고 눈에 익은 지브리풍 그림들이 나타나자 미소를 감추기 힘들었습니다. 디지털화된 요즘 시대에도 집적 손으로 그리는 걸 추구하는 지브리의 방식은 한 컷 한 컷에도 대단한 정성이 스며있습니다. 1초 만에 지나가는 풍경에도 그들의 땀이 맺혀 있는 것 같아 왠지 더 감성적으로 변하는 것 같네요. 철저히 자신들의 철학을 지키는 지브리는 성우 또한 전문 성우가 아니라 캐릭터에 목소리를 입히는 일을 전혀 해보지 않았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본 후 녹음을 합니다. 매번 이렇게 하면 예산도 많이 필요하고 여러 불편한 점들이 많을 텐데도 그들은 영상의 생생한 색감을 더하기 위한 연기를 위한 목소리가 아니라 진짜 목소리를 찾는 일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잡이야기가 많은 건 이 글이 저에게 무척이나 특별하기 때문입니다. 중학생 때 우연히 접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후로 모든 지브리 영화를 챙겨봤던(단편, 그 외 지브리 협력했던 작품까지도) 제가 그들의 마지막 영화에서야 리뷰를 쓰게 될지 몰랐습니다. 지브리의 영화는 전부 사랑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처음 놀라운 세계를 접하게 해주었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인데 전 지브리의 마지막 작품 '추억의 마니'에서야 리뷰를 쓰게 되었네요. 할 일을 뒤로 미루다 보면 끝이 온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지브리 영상은 언제나 별 5개를 놓치기 힘든 위치에 있죠. 남은 건 이야기뿐인데 미야자키 하야오의 뒤를 이을 곤도 요시후미가 죽은 후 그것이 잘 안 되고 있는 게 현 지브리의 실정입니다. 결국, 연달은 흥행 실패로 스튜디오가 문을 닿게 됩니다. 사요나라 지브리.영화는 하나의 완성된 세계입니다. 자신과 다른 또 하나의 세계를 탐미하기 위해 사람들은 영화에 빠져들죠. 아름다운 영상만을 위해 지브리 영화 선택하는 사람은 드물 겁니다. 스크린에 빠져드는 건 그들의 세계를 보기 위해서죠. 이 말을 하는 건 안타깝고 슬프지만, 이번 '추억의 마니'도 이야기 면에선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안나가 꿈과 공상, 현실을 이동하며 진행하는 이번 이야기는 자칫 애매하고 혼란스럽게 받아드리기 쉽습니다. 관객을 이리저리 흔들어 놓더라도 돌아올 구심점과 진행 방향을 알게끔 확실한 표지판을 세워두어야 했던 걸 지브리가 잃은 것 같습니다. 어릴 적 부모님을 잃고 양부모님과의 관계에 고민하는 안나가, 처음에는 흔한 사춘기 소녀의 히스테리인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상실의 상처에 울고 있는 안나는 (원인 모를) 불만 가득한 사춘기 소녀가 되어버렸고 그런 안나를 치료해주는 마니 영혼도 크게 빛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달빛 아래 아름다운 소녀 그 이상도 이하도) 사람의 마음마저 치료해준 나이팅게일과도 같은 아름다움이 마니에게 있었는데 히로인의 매력을 매장해버리다니, 엄청난 실수였던 것 같습니다.

 

 결국, 그렇게 앞도 보기 힘든 안갯속을 헤매다가 이야기의 종착점에 도달해서야 지브리가 '추억의 마니'로 통해 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깨닫게 됩니다. 마니의 정체에 눈물이 나온 건 사실이지만 원래 받아야 할 감동은 이 정도가 아니라는 것을 깊이 체감합니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의 감동이 절감 된다는 점은 정말 아쉽습니다. 놀라움과 안타까운 마음이 썩여 엔딩 크레딧이 지금 듣고 계신 노래와 나왔습니다. 이런 멋진 이야기를 이렇게 진행하다니...

그럼에도 추억의 마니는 놓칠 수 없는 작품입니다. 큰 상실에 마음을 다친 소녀가 시공을 넘어온 사랑을 받아 치료 되는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비록 구심점을 잡지 못한 채 비틀거리긴 했지만 영화 곳곳에서 터널을 지나는 듯한 느낌이 살아있었습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그 터널입니다. 이야기가 시작되려는 사건의 도입부, 어떤 세계가 펼쳐질까 하는 두근거림과 긴장감이 '추억의 마니' 곳곳에서 스며 있습니다. 단 그뿐이었지만 비()하야오 작품으로 이런 두근거림을 만들 수 있게 된 건 지브리의 큰 도약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명 앞으로 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여지가 보입니다. 그래서 이젠 끝나버렸다는 게 더 안타깝고 슬프게 느껴지는 걸까요.아이와 함께 볼만한 영화는 아닙니다. 누군가와 함께 볼 영화도 아닌 것 같습니다. 될 수 있으면 꺼려지더라도 혼자 영화관에 가서 보는 걸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가을에 열린 추모식에 다녀온다는 마음으로 지브리의 마지막 영화를 감상하시면 좋으실 것 같습니다. 사요나라 지브리




 

폭스캐처 마크 러펄로 헐크의 새로운 모습

엄격 진지 리뷰

 

 

 

 

개봉일 - 2014117(영국) | 폭스캐처 2시간 14 | 18세이상 | 드라마 

 

"존 듀폰은 왜, 데이브 슐츠를 쐈을까." <폭스캐처>


 스포일러를 하지 않는 리뷰를 쓰고 싶었는데 이번엔 좀 힘들 것 같습니다. 이번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폭스캐처의 클라이맥스, 반전, 결말에 해당하는 부분이라 내용을 감출 수가 없네요.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았고 내용을 미리 알게 된 다음에 영화를 감상하고 싶지 않다면 이 글을 피해 가셔야 합니다. 심심할 정도로 현실 그대로를 보여주는 이 영화를 내용까지 전부 알게 된 후에 감상한다면 눈동자가 감기는 재앙에서 벗어나실 수 없을 겁니다


 한밤에 전 자전거를 타고 거리로 나섰습니다. 어두워진 거리에서 울리는 자동차 경적 소리는 언제나 불안합니다전광등도 너무 눈부시네요. 아슬아슬, 균형을 유지하는 거리가 절 설레게 합니다. 목적지도, 때도 없이 자전거를 타는 것이 제 취미입니다. 음습한 취미죠. 주로 그 취미를 하게 되는 때가 직장인과 학생들은 잠들어 있을 시간대에 이루어지는 만큼 밝은 취미라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이번은 목적지를 두고 떠났습니다. 한동안 가지 못했던 영화관이 너무 그리웠습니다빅히어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쎄세봉... 무엇을 볼까 페달을 밟는 내내 행복한 고민을 했습니다. 언제나 목적지를 두지 않고 페달을 밟고 다녔던 터라 오늘은 정말 다르게 느껴집니다. 목적지가 없는 사이클리스트는 어두운 거리를 쌩쌩 달리다 집으로 돌아즘이면 피로에 녹초가 되는 법입니다. 이번엔 목적지가 있어서인지 페이스를 유지하며 넉넉히 갔다 올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러니까 왠지 삶의 목적지는 도달할 곳을 위해 정하는 게 아니라 돌아올 때를 위해 정해두는 건아닐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2월의 아직 차가운 밤공기경적 소리, 흔들리는 전광등을 지나 메가박스에 도착해서 고른 영화는 폭스캐처. 기분 전환을 하고 싶었던 터라 옛 기분을느끼게 해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나 유쾌한 빅히어로를 보고 싶었는데 시간대가 맞지 않았습니다. 어린 고객들을 노리는 가족영화라 그런지 낮 시간대에만 상영을 했습니다우연인지 운명인지 결국 폭스캐처 엔딩크래딧이 보고 있을 때에 제 기분은 심히 울적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건너온 다리 아래로 적적히 흐르던 강을 한동안 쳐다볼 정도였습니다. 이런 기분으론 리뷰를 적을 수 없었습니다. 마음이 흔들린 건 단 하나의 질문에서입니다

 

 


존 듀폰은 왜 데이브를 쐈을까.   

 

 


 영화를 보는 내내 공감할 수 없었던 존 듀폰의 어이없는 행동들은 전부 허식에 가득 차 불쾌했습니다. 조류학자 이기도 하다는 그의 코는 왠지 새의 부리처럼 길고 도드라졌고 언제나 그 끝은 위를 향해 있었습니다. 턱 또한 치켜세워진 상태로 상대를 내려다보는 듯한 눈동자, 속내를 알 수 없는 살짝 벌어진 체로 굳어진 입은 친근감과는 동떨어진 괴짜 재벌가라는 인상을 더욱 확고히 합니다생긴 대로 성격 또한 심하게 꼬여 있었습니다
폭스캐처에서 존 듀폰이 마크와 화해하고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다는 영화 같은 이야기는 결국 나오지 않았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제가 기대했던 결말이죠. 그런 감동의 드라마였다면 기분전환 제대로 한 체 신나게 페달을 밟으면 집으로 돌아왔을 겁니다. 다리 아래로 흐르는 강을 지긋이 내려다보는 깊은 생각에 빠져들지 않았을 겁니다. 결국, 영화는 데이브 슐츠가 존 듀폰 총에 죽으면서 끝나죠. 현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라그럴까요? 지독하게 현실적이라고 느껴졌습니다. 그가 눈도 감지 못한 채로 차가운 눈 위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걸 도저히 받아드리기가 힘들었고 이해할 수도 없었습니다. 속내를 알 수 없긴 했지만 존 듀폰이 그를 총으로 쏴야 했을 이유라고는 전혀 찾을 수 없었으니까요엔딩크래딧이 올라올 때가 되어서는 이 영화 자체를 부정했습니다. 이런 영화를 보고 싶었던 것이 아닌데 라고까지 생각해버렸습니다. 이것이 현실이라는 듯, 재앙이 얼마나 사소한 부분에서 다가오고 이해하기 힘든 것인지 그런 면모를 그대로 비추고 있었습니다. 너무나도 꺼림칙했습니다. 마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비치기에 보고 싶지 않은 거울처럼 폭스캐처 또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왜 존 듀폰은 데이브 슐츠를 쐈던 것일까요. 가장 큰 단서는 존 듀폰이 데이브에게 했던 마지막 말 일 텐데 오히려 그 말은 더 큰 혼란을 낳습니다

 


"내가 우습게 보이나."

 


 누구도 존을 진실하게 대하지 않았습니다단 한 사람 데이브를 제외하곤 사람들은 존 듀폰이 가진 폭스캐처 가문과 돈만을 바라봤습니다. 데이브만이 유일하게 존에게 속마음과 목적을 털어놓으며 진실하게 행동했습니다. 존 듀폰이 일요일에 찾아왔을 때 그는 일요일이어서라고 말합니다. 일요일이니까 가족과 보내야 한다그런 식으로 존 듀폰을 돌려보냅니다. 이는 몇 차례 있었던 일로 데이브가 인간관계 가질 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가졌든 언제나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보여주며 대하여 준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존에게 천박하다며 레슬링이 아니라 승마를 권하는 그의 어머니 말고 처음으로 NO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생긴 것입니다. 그 때문에 자신을 우습게 여겼다고 생각하고 쏜 것일까요. 제 생각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존 듀폰은 철저히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으며 자란 인물입니다. 괴짜에 당연한 부분도 잠시 생각이 필요한 듯 뜸들여 어딘가 모자라는 사람 같이 보일 때도 있지만 멍청하거나 바보는 아니었습니다. 데이브가 얼마나 좋고 멋진 사람이었는지 존 듀폰 또한 알고 있었습니다. 데이브를 데려오고 싶어 마크를 이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죠. 그렇기에 존이 왜 그런 말을 하며 데이브를 쐈는지는 더욱 미궁에 빠지는 것 같습니다

 데이브를 쏘기 전 마지막으로 존이 봤던 자신의 다큐멘터리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요. 그가 프로레슬러의 명코치로써 미국 프로레슬링의 커다란 업적을 세웠다는 건 다큐멘터리의 허구에서만 존재합니다짜진 각본에 다 같이 연기를 한 거죠. 존은 선수들에게 돈만을 지원해줄 뿐이었습니다. 그들의 멘토나 코치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런 가식적인 영상을 마지막으로 데이브를 죽이러 갑니다기가 막힌 반전입니다. 충격적인 결말입니다. 전 다만 다큐멘터리의 마지막이 마크 슐츠의 연설 부분에서 끝나 존이 마크에게사과하러 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비록 쓰인 연설문을 그대로 읽은것뿐이지만 마크가 자신이 드디어 아버지와 같은 존재를 찾아다며 존에 관해 이야기 하는 부분은 감동적이었으니까요. (존이 이 연설로 자신의 삶이 전부 거짓으로 점쳐져 있다는 걸 느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자신과 정반대의 삶을 사는 데이브를 부정하기 위해 그랬던 것일까요) 마크의 연설을 보고 그를 모욕하고 주고 때렸던 것을 사과하지 않을까 했습니다. 다큐멘터리가 끝난 후 운전사에게 차를 준비하라고 했을 때 전 잠시 설렜습니다. 드디어 감동의 드라마가 나오는 걸까. 영화를 보기 전 폭스캐처의 장르가 드라마스릴러인 것을 알았다면 그런 헛된 기대는 하지 않았을 텐데기대한 만큼 실망하고 좌절하게 되는 공식은 큰 상실감을 남기는 것 같습니다

 2010년 감옥에서 생을 마감한 존 듀폰 자신도 이 이야기의 정확한 답을 알지 못할 겁니다. 그의 살인은 계획적인 면모보다 충동적인 면모가 크기 때문입니다. 그날 눈이 내리고 있었다면 데이브가 죽음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존이 데이브를 죽이려 가기 전 운전사에게 눈이 내리고 있는지 묻던 그의 마지막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어쩌면 그날 눈이 내리고 있었다면 존은 진심을 터놓고 지낼 수 있는 데이브와 친구가 되어 다른 결말에 도달하지 않았을까 그런 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오릅니다.

 


"그런가? 아직 눈이 내리는군."
"차를 준비할까요."
"아니, 눈이 온다면 다음에 가지." 

 

 


 이렇게 폭스캐처의 비극이 일어나지 않아 이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이런 리뷰를 적고 있지 않겠죠. 결국,  듀폰의 행동에 의문점을 조금이라도 지워내기 위해선 그의 행동 단면적인 부분이 아니라 전체적인 관점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인디언의 구설수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그의 삶을 살아보지 않고는 그를 함부로 판단하지 마라. 존 듀폰이 데이브를 왜 쐈는지는 알 수 없어도 존 듀폰이라는 사람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면 영화의 충격적인 결말에 공황에 빠지게 되지 않을 겁니다어릴 적 유일한 친구라고 믿었던 사람은 돈에 친구행세를 했던 것뿐이었고 그가 사랑하는 사람이자 의지가 되어줘야 할 어머니는 그를 어린아이 취급을 해버리며 자신이 집중하는 레슬링을 천박하게만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주변의 거짓된 행동과 허식. 돈이 만들어낸 끔찍한 역경 속에서 존 듀폰, 그가 어떤 심경과 생각으로 살아왔는지 누구도 알 수 없을 겁니다. 그는 자신의 삶이 점점 비참하고 엉망이 되어가는 걸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을까요

 비록 데이브를 총으로 쏘고 감옥에서 삶을 마감하긴 했지만 전 존의 삶을 본 순간 이런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비록 대단한 가문과 재벌이지만 그의 삶은 안타깝고 비극적이다. 순간에 감정에 마크와의 관계가 삐뚤어졌을 때도 그는 마크와 전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지만 존 듀폰이라는 인간은 화해의 방법을 몰랐습니다. 존 듀폰은 언제나 아쉬울 게 없는 사람이었죠. 고개를 숙이거나 사과라는 것에 대해서조차 몰랐습니다. 마크가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유리창 너머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죠우연한 계기로 마크와 존 듀폰의 관계가 회복되는 영화 같은 이야기는 폭스캐처에 없었습니다엔딩크래딧이 올라오는 순간까지 비극적이고 현실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주죠. 모든 걸 가졌음에도 살인을 저지른 그가 우둔하고 멍청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마지막으로 전 그는 바보도 멍청이도 아니었고 다만 서툴고 어리숙한 사람일 뿐이다. 거대한 가문과 재력 속에서 그가 사람으로서 배우고 느껴야 했던 인간관계는 만날 수 없었다.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엑스마키나(Ex Machina) 새로운 SF 영화


※스포주의

영화 결말 해설에 대한 부분을 담고 있습니다.

첫줄부터 위험합니다.





 


죽은 '네이든'과 작동을 멈춤 '쿄코'

살과 옷, 가발 그리고 자유를 얻은 '에이바'

연구소에 갇힌 '칼렙'

영화는 이렇게 막을 내립니다.


칼렙과 에이바의 사랑을 응원하고 있던 입장에선 안타까워 가슴이 미워집니다

에이바는 칼렙을 사랑했던 척 했던 걸까요.

네이든의 말처럼 쥐가 미로를 탈출하기 위한 도구로 칼렙을 사랑하는 척했던 것인가요.


"사랑은 번식을 위한 하나의 도구이다."


"광기와 사랑은 쌍둥이 자매와 같다."


꿈과 낭만이 없는 모모씨들의 암울한 말들이 떠오릅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감독의 의도였든 아니었든 영화에 나오는 영상을 가지고 제 나름의 해석에 들어갑니다.







네이든이 죽고 에이바가 자유를 찾은 시점에서 나오는 7차 테스트는 이로써 영화가 새로운 대국에 접어들었음을 알려줍니다.

칼렙은 에이바가 높은 지능을 가진 안드로이드라 말하며 실험에 성공했다고 말했고 네이든은 에이바가 미로를 탈출하기 위한 지능을 갖췄다는 걸 조소하며 성공이라 했습니다. 테스트는 성공이었습니다. 그런데 테스트는 끝나지 않았나 봅니다. 과연 에이바에게 어떤 테스트가 남아있었을까요.






에이바가 칼렙을 두고 떠나기 전에 한 마지막 말입니다. 그리고 네이든의 침실로가 팔과 살 옷 가발을 얻고 완전히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납니다. 감명 깊은 장면입니다. 칼렙이 에이바의 첫 만남에서 물어봤던 나이에 대해 에이바는 1이라고 대답합니다. 하루도 일주일도 일년도 아닌 1인 것은 컴퓨터의 구성이 무의 0 과 유의 1로만 이루어져 있기에 에이바는 자신은 존재하고 고로 1이다 이야기한 것 입니다. 인간과 굉장히 다른 시간의 관념을 보여주는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곳곳에는 그렇게 높은 지능을 가졌고 칼렙과 교감을 하지만 분명히 다른 인공지능으로써의 면모를 계속해서 들어내는데 자신의 초기 모델격인 안드로이드의 팔과 살 옷을 얻은 에이바는 완전한 다른 인공지능, 사람이 되어버린 느낌이 듭니다.





이젠 정말 사람같은 미소도 보이는 에이바입니다. 예뻐




하지만 칼렙을 두고 갔어 쌍년





칼렙이 타고 돌아와야 할 헬기를 에이바는 무슨 말로 조종사를 설득했는지 자신이 타고 도시로 갑니다. 그 후의 장면입니다. 그림자밖에 나타나지 않았지만 저희가 궁금해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아주 중요한 장면입니다. 칼렙과의 대화에서처럼 에이바는 사람이 많은 도시로 갑니다. 연구소를 나가면 사람이 보고 싶다는 그녀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칼렙과 같이 보고 싶다는 말도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왜 에이바는 칼렙을 두고 왔을까요. 명확하진 않지만 전 에이바가 인간과 교감하고 많은 걸 알고 있지만 아직은 미성숙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녀의 우선순위에 칼렙이 높지 않았던 겁니다. 에이바에 대한 칼렙의 사랑은 진짜였습니다. 칼렙의 대한 에이바의 사랑? 글쎄요. 아직 명확한 인간의 모습을 갖지도 못했던 에이바에게 사랑은 이른 이야기가 아니었을까요. 하지만 분명 칼렙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점차 사랑으로 변해갈 그런 호감을 말이죠. 이건 성에 대한 심리의 부분과 비슷할까요. 남자는 첫눈에 사랑에 빠지고 여자는 서서히 사랑에 빠진다는 말과 비슷한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에이바가 그걸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에이바의 옆으로 한 쌍의 커플이 손을 잡고 지나갑니다. 위처럼 그림자로 밖에 보여주지 않습니다.



 


거리의 커플을 보고 멈춰 서서 무언가를 찾는 듯한 에이바. 그 고민은 길지 않았고 잠시 후 에이바는 뒤돌아서며 자신이 찾는 것을 향해 걸음을 옮깁니다이어서 만든 사람 소개 화면이 올라옵니다. 에이바의 7차 테스트. 과연 에이바는 사랑을 할수 있을까. 인공지능은 사랑을 느낄 수 있을까에 대한 모든 이야기는 이로써 끝이 납니다. 짝짝짝 

결말은 우리들의 것입니다. 제 눈엔 연구소로 돌아간 에이바가 칼렙을 꼭 끌어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네요. 훈훈합니다. 다행입니다

 


샤인(Shine) 1996년 호주 드라마

감독 스콧힉

출연진 제프리 러시 노아 테일러 아르민 뮐러슈탈 

 

 

 

첫인상

 파란 이어폰을 귀에 꽂은 남자는 커피가 섞인 크림색 바바리를 입고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체 하늘을 향해 뛰고 있었다. 샤인이 머릿속에 심어준 첫 장면이다. 첫 이미지가 중요하다는 말이 흔한 돌멩이가 되어버렸지만, 그 가치만은 돌멩이에 머물지 않을 터이다. 샤인의 그런 첫인상은 내게 성공적이었다. 사회는 분명 바바리만 입고 날뛰는 사람을 미친 변태라 했다. 어디로 표출 해야 할지 모르는 분노, 그 과녁으로 더없이 좋은 사회에게 또 한 번의 화살을 날리고 싶은 걸까. 이상하게도 괴상하게도 다르게도 그 장면을 본 후 샤인이라는 영화는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스치듯 본 예고편에 매료되어 결국 샤인을 봤으니 예고편 제작자는 무척이나 자기 일을 잘하고 있음에 확신을 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거기에 샤인을 찍은 카메라 감독부터 컷을 구상한 총감독, 이 영화에 관계되어 일한 분들에 땀이 제값을 했다는 걸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그렇다고 샤인, 이 영화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것은 아니다. 빠르고 과격한 할리우드 영화에 길들 대로 길든 사람이 느리고 덜컹거리는 오래된 차에 올라 정적인 풍경을 감상하려면 내면 친구들 중에서도 덩치가 럭비선수만 한 '참을성'을 사귀어야 했다. 다행히 친하진 않아도 그런 친구가 몇 명 있다.

 

 

 

 

라흐마니노프 3번 곡

 샤인에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가 가진 특유의 다큐가 생생히 묻어나왔다. 가족관계, 사제관계, 연인관계 그렇게 사람과 사람 그리고 피아노, 그 속에서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을 중심점으로 흘러든다. 샤인속 파크스 교수의 말에 의하면 "라흐마니노프 3번은. 불멸의 곡이야! 미치지 않고서야 이 곡을 연주할 수는 없네!" 라 할만한 어려운 곡이었다. 주인공인 데이비드 헬프갓도 이 곡 이후로 일반인의 길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같은 말을 빠르게 반복하며 더듬거리게 되었다. 피아니스트의 무덤이라 할만한 곡을 데이비드 헬프갓은 왜 매달렸을까. 그는 재능있고 피아노에게 성실하기까지 했다. 그에 손에 연주되길 바라는 곡들을 모아놓으면 데이비드 삶에 끝나기까지 반은 연주할 수 있을까. 운명과 필연이라 할까. 라흐마니노프 3번 곡은 데이비드 헬프갓에게 어릴 때 만난 유니콘, 피아노 해안에서 그의 아버지와 함께 항해해가는 목적지였다. 비록 아버지의 과한 집착이 둘을 갈라서게 되었지만, 아버지를 향한 데이비드의 마음이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 마음, 사랑은 변했지만, 데이비드는 항상 아버지를 사랑했었다.

 

 

 

소망의 끝에는

 가족과 연을 끊고 영국 왕립음악원에 들어서서도 데이비드는 라흐마니노프 3번 곡 끝에서라면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지만, 데이비드에게 피아노와 라흐마니노프 3번 곡은 곡예사가 오르는 외줄보다 위태로운 단 하나의 선이었다. 데이비드가 그 끝에 가족이 아닌 병을 얻은 건 피아노를 칠 때 영혼의 일부분을 심지로 태웠기 때문이 아닐까. 하얀 증기를 뿜으며 앞으로 나가는 기차에는 석탄이라는 연료가 있지만, 데이비드에게는 가족과 연이 끊기면서 남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원래는 애정을 태워 두드려야 할 건반을 그는 맨 몸뚱어리 하나로 버티며 그 속에 껍데기처럼 남은 본질을 불쏘시개로 아버지와 자신의 소망이 깃든 곡을 완주했던 것이 아닐까.

 

 

 

 

데이비드의 변화

 데이비드의 마음이 변했다는 건 피터 헬프갓의 바이올린 이야기에서 알 수 있었다. 데이비드의 아버지 피터는 항상 그에게 이야기한다. 자신은 바이올린을 켜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았다고 자신의 아버지가 바이올린을 어떻게 했는지 데이비드에게 묻는다. '바이올린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니?' 어릴 적 아버지를 맹목적으로 따르던 데이비드는 항상 이렇게 대답했다. '네 알아요. 박살 나버렸죠.' 강인하고 자신감 넘치는 아버지에게 기대어 항해해 나가던 순간엔 아버지를 선장으로 지평으로 등대로 굳게 믿었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아이작 스턴이 미국 유학을 제의해도 아버지의 반대 하나에 포기했다. 두 번째로 다가온 영국 왕립음악원 입학 기회도 아버지가 반대했지만, 이번에 데이비드는 떠난다. 가족 간의 관계를 모두 끊고 가라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도 그는 떠난다. 데이비드가 떠난 이유엔 아버지에 대한 믿음이 깨진 데 있을 것이다. 1등과 살아남는 것을 강박적으로 주입받은 데이비드는 아버지의 말에 따라 수많은 피아노 경합에서 수상해오다 미국 유학 제의를 거절한 후 경합에서 1위 자리를 뺏기게 된다. 그 실패가 불신의 시작이 되어버렸다. 영국 왕립음악원에서 홀로 공부하다 라흐마니노프 3번 곡을 연주하고 병을 얻었을 때도 아버지는 찾아오지 않았다. 데이비드가 아버지와 재회하는 순간은 레스토랑 2층에서 이루어진다. 레스토랑에서 연주자로 지내는 데이비드를 다시 찾은 피터는 또다시 자기 아들에게 묻는다. '바이올린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니?' '아니오. 몰라요.' 이 대답을 듣고 피터는 홀로서기에 성공한 데이비드를 온전히 보게 되고 슬픔과 자랑스러움 쓸쓸함을 들어내며 돌아서 레스토랑을 떠난다. 데이비드는 가족의 품을 스스로 떠나 불안했고 위태로웠다. 연주하다 병까지 얻었다. 그럼에도 자신을 들어내는 데 성공해 아내와 더불어 자신을 받아주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끝내는 다시 피아니스트로서 삶을 이어가게 되었다. 더욱 성장한 피아니스트로서 많은 사람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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