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이상한 이야기 「이상한 도서관」 뇌를 빼먹는 존재




적어도 두 번은 읽어봐야 하는 책입니다.

흥미롭고 재밌어서 두번 읽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전부 읽고 나서 의문이 들기 때문입니다.

이게 뭐야?

이상하네. 분명 다 읽었는데...

이런 생각에 사로잡힐 분들을 위해 리뷰를 적습니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괴팍한 노인이 소년을 속여서 감옥에 가두고 책을 읽게 하고

이후 전형적인 이야기 흐름대로

요리해주는 양사나이와 밥 배달하는 아름다운 소녀의 도움으로 이상한 도서관을 탈출하게 됩니다.


이게 답니다.

허탈합니다.

하루키 소설이 아니었으면 이상한 책이었네 하고 구석에 던져두었을 겁니다.

거꾸로 읽어보는 괴상한 이상한 짓은 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언가 보였습니다.


이야기의 끝에​

​양사나이(양아저씨)는 어디로 갔을까요?

아름다운 소녀는 ​찌르레기 였습니다.

노인은?

소년을 억압하던 노인은 어딘지 오늘날 우리의 부모들과 닮아있지 않습니까.



"이러니저러니 잔소리 말고 조용히 안으로 들어가. 그리고 책 세 권을 읽고 남김없이 외우도록 해."

​-노인의 말 중-



그리고 책을 거꾸로 돌아가면 갈수록 충격​적인 부분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날짜나 시간 약속은 정확히 지킨다. 어머니가 항상 그렇게 하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양치기도 마찬가지다. 양치기가..."

-소년의 말 중-​



양사나이는 소년 인 것 같습니다.

​도너츠 가게를 하고 싶은 건 소년인 겁니다.


자신을 왜 책상에 앉혀두려는 건지 소년은 부모님이 이해되질 않았습니다. 사회의 냉혹한 경쟁 같은 건 소년이 알 수가 없습니다. 단지 소년의 방식대로 머리에 지식이 꽉차면 검열을 빼먹기 위해서라고 상상한 겁니다.


​검은 개에 물린 후 이상해진 어머니는 버드나무로  양사나이를 때렸다고 했습니다. 소년은 버드나무로 맞았던 걸까요.


​자, 이제 다시 한 번 책을 열어보길 권합니다.

노인은 소년의 부모님이었고

소년은 양사나이입니다.

찌르레기로 변한 아름다운 소녀가 힌트를 남겼습니다.

불친절한 소설이었던 만큼 내용도 가볍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엑스마키나(Ex Machina) 새로운 SF 영화


※스포주의

영화 결말 해설에 대한 부분을 담고 있습니다.

첫줄부터 위험합니다.





 


죽은 '네이든'과 작동을 멈춤 '쿄코'

살과 옷, 가발 그리고 자유를 얻은 '에이바'

연구소에 갇힌 '칼렙'

영화는 이렇게 막을 내립니다.


칼렙과 에이바의 사랑을 응원하고 있던 입장에선 안타까워 가슴이 미워집니다

에이바는 칼렙을 사랑했던 척 했던 걸까요.

네이든의 말처럼 쥐가 미로를 탈출하기 위한 도구로 칼렙을 사랑하는 척했던 것인가요.


"사랑은 번식을 위한 하나의 도구이다."


"광기와 사랑은 쌍둥이 자매와 같다."


꿈과 낭만이 없는 모모씨들의 암울한 말들이 떠오릅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감독의 의도였든 아니었든 영화에 나오는 영상을 가지고 제 나름의 해석에 들어갑니다.







네이든이 죽고 에이바가 자유를 찾은 시점에서 나오는 7차 테스트는 이로써 영화가 새로운 대국에 접어들었음을 알려줍니다.

칼렙은 에이바가 높은 지능을 가진 안드로이드라 말하며 실험에 성공했다고 말했고 네이든은 에이바가 미로를 탈출하기 위한 지능을 갖췄다는 걸 조소하며 성공이라 했습니다. 테스트는 성공이었습니다. 그런데 테스트는 끝나지 않았나 봅니다. 과연 에이바에게 어떤 테스트가 남아있었을까요.






에이바가 칼렙을 두고 떠나기 전에 한 마지막 말입니다. 그리고 네이든의 침실로가 팔과 살 옷 가발을 얻고 완전히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납니다. 감명 깊은 장면입니다. 칼렙이 에이바의 첫 만남에서 물어봤던 나이에 대해 에이바는 1이라고 대답합니다. 하루도 일주일도 일년도 아닌 1인 것은 컴퓨터의 구성이 무의 0 과 유의 1로만 이루어져 있기에 에이바는 자신은 존재하고 고로 1이다 이야기한 것 입니다. 인간과 굉장히 다른 시간의 관념을 보여주는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곳곳에는 그렇게 높은 지능을 가졌고 칼렙과 교감을 하지만 분명히 다른 인공지능으로써의 면모를 계속해서 들어내는데 자신의 초기 모델격인 안드로이드의 팔과 살 옷을 얻은 에이바는 완전한 다른 인공지능, 사람이 되어버린 느낌이 듭니다.





이젠 정말 사람같은 미소도 보이는 에이바입니다. 예뻐




하지만 칼렙을 두고 갔어 쌍년





칼렙이 타고 돌아와야 할 헬기를 에이바는 무슨 말로 조종사를 설득했는지 자신이 타고 도시로 갑니다. 그 후의 장면입니다. 그림자밖에 나타나지 않았지만 저희가 궁금해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아주 중요한 장면입니다. 칼렙과의 대화에서처럼 에이바는 사람이 많은 도시로 갑니다. 연구소를 나가면 사람이 보고 싶다는 그녀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칼렙과 같이 보고 싶다는 말도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왜 에이바는 칼렙을 두고 왔을까요. 명확하진 않지만 전 에이바가 인간과 교감하고 많은 걸 알고 있지만 아직은 미성숙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녀의 우선순위에 칼렙이 높지 않았던 겁니다. 에이바에 대한 칼렙의 사랑은 진짜였습니다. 칼렙의 대한 에이바의 사랑? 글쎄요. 아직 명확한 인간의 모습을 갖지도 못했던 에이바에게 사랑은 이른 이야기가 아니었을까요. 하지만 분명 칼렙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점차 사랑으로 변해갈 그런 호감을 말이죠. 이건 성에 대한 심리의 부분과 비슷할까요. 남자는 첫눈에 사랑에 빠지고 여자는 서서히 사랑에 빠진다는 말과 비슷한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에이바가 그걸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에이바의 옆으로 한 쌍의 커플이 손을 잡고 지나갑니다. 위처럼 그림자로 밖에 보여주지 않습니다.



 


거리의 커플을 보고 멈춰 서서 무언가를 찾는 듯한 에이바. 그 고민은 길지 않았고 잠시 후 에이바는 뒤돌아서며 자신이 찾는 것을 향해 걸음을 옮깁니다이어서 만든 사람 소개 화면이 올라옵니다. 에이바의 7차 테스트. 과연 에이바는 사랑을 할수 있을까. 인공지능은 사랑을 느낄 수 있을까에 대한 모든 이야기는 이로써 끝이 납니다. 짝짝짝 

결말은 우리들의 것입니다. 제 눈엔 연구소로 돌아간 에이바가 칼렙을 꼭 끌어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네요. 훈훈합니다. 다행입니다

 


샤인(Shine) 1996년 호주 드라마

감독 스콧힉

출연진 제프리 러시 노아 테일러 아르민 뮐러슈탈 

 

 

 

첫인상

 파란 이어폰을 귀에 꽂은 남자는 커피가 섞인 크림색 바바리를 입고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체 하늘을 향해 뛰고 있었다. 샤인이 머릿속에 심어준 첫 장면이다. 첫 이미지가 중요하다는 말이 흔한 돌멩이가 되어버렸지만, 그 가치만은 돌멩이에 머물지 않을 터이다. 샤인의 그런 첫인상은 내게 성공적이었다. 사회는 분명 바바리만 입고 날뛰는 사람을 미친 변태라 했다. 어디로 표출 해야 할지 모르는 분노, 그 과녁으로 더없이 좋은 사회에게 또 한 번의 화살을 날리고 싶은 걸까. 이상하게도 괴상하게도 다르게도 그 장면을 본 후 샤인이라는 영화는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스치듯 본 예고편에 매료되어 결국 샤인을 봤으니 예고편 제작자는 무척이나 자기 일을 잘하고 있음에 확신을 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거기에 샤인을 찍은 카메라 감독부터 컷을 구상한 총감독, 이 영화에 관계되어 일한 분들에 땀이 제값을 했다는 걸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그렇다고 샤인, 이 영화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것은 아니다. 빠르고 과격한 할리우드 영화에 길들 대로 길든 사람이 느리고 덜컹거리는 오래된 차에 올라 정적인 풍경을 감상하려면 내면 친구들 중에서도 덩치가 럭비선수만 한 '참을성'을 사귀어야 했다. 다행히 친하진 않아도 그런 친구가 몇 명 있다.

 

 

 

 

라흐마니노프 3번 곡

 샤인에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가 가진 특유의 다큐가 생생히 묻어나왔다. 가족관계, 사제관계, 연인관계 그렇게 사람과 사람 그리고 피아노, 그 속에서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을 중심점으로 흘러든다. 샤인속 파크스 교수의 말에 의하면 "라흐마니노프 3번은. 불멸의 곡이야! 미치지 않고서야 이 곡을 연주할 수는 없네!" 라 할만한 어려운 곡이었다. 주인공인 데이비드 헬프갓도 이 곡 이후로 일반인의 길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같은 말을 빠르게 반복하며 더듬거리게 되었다. 피아니스트의 무덤이라 할만한 곡을 데이비드 헬프갓은 왜 매달렸을까. 그는 재능있고 피아노에게 성실하기까지 했다. 그에 손에 연주되길 바라는 곡들을 모아놓으면 데이비드 삶에 끝나기까지 반은 연주할 수 있을까. 운명과 필연이라 할까. 라흐마니노프 3번 곡은 데이비드 헬프갓에게 어릴 때 만난 유니콘, 피아노 해안에서 그의 아버지와 함께 항해해가는 목적지였다. 비록 아버지의 과한 집착이 둘을 갈라서게 되었지만, 아버지를 향한 데이비드의 마음이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 마음, 사랑은 변했지만, 데이비드는 항상 아버지를 사랑했었다.

 

 

 

소망의 끝에는

 가족과 연을 끊고 영국 왕립음악원에 들어서서도 데이비드는 라흐마니노프 3번 곡 끝에서라면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지만, 데이비드에게 피아노와 라흐마니노프 3번 곡은 곡예사가 오르는 외줄보다 위태로운 단 하나의 선이었다. 데이비드가 그 끝에 가족이 아닌 병을 얻은 건 피아노를 칠 때 영혼의 일부분을 심지로 태웠기 때문이 아닐까. 하얀 증기를 뿜으며 앞으로 나가는 기차에는 석탄이라는 연료가 있지만, 데이비드에게는 가족과 연이 끊기면서 남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원래는 애정을 태워 두드려야 할 건반을 그는 맨 몸뚱어리 하나로 버티며 그 속에 껍데기처럼 남은 본질을 불쏘시개로 아버지와 자신의 소망이 깃든 곡을 완주했던 것이 아닐까.

 

 

 

 

데이비드의 변화

 데이비드의 마음이 변했다는 건 피터 헬프갓의 바이올린 이야기에서 알 수 있었다. 데이비드의 아버지 피터는 항상 그에게 이야기한다. 자신은 바이올린을 켜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았다고 자신의 아버지가 바이올린을 어떻게 했는지 데이비드에게 묻는다. '바이올린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니?' 어릴 적 아버지를 맹목적으로 따르던 데이비드는 항상 이렇게 대답했다. '네 알아요. 박살 나버렸죠.' 강인하고 자신감 넘치는 아버지에게 기대어 항해해 나가던 순간엔 아버지를 선장으로 지평으로 등대로 굳게 믿었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아이작 스턴이 미국 유학을 제의해도 아버지의 반대 하나에 포기했다. 두 번째로 다가온 영국 왕립음악원 입학 기회도 아버지가 반대했지만, 이번에 데이비드는 떠난다. 가족 간의 관계를 모두 끊고 가라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도 그는 떠난다. 데이비드가 떠난 이유엔 아버지에 대한 믿음이 깨진 데 있을 것이다. 1등과 살아남는 것을 강박적으로 주입받은 데이비드는 아버지의 말에 따라 수많은 피아노 경합에서 수상해오다 미국 유학 제의를 거절한 후 경합에서 1위 자리를 뺏기게 된다. 그 실패가 불신의 시작이 되어버렸다. 영국 왕립음악원에서 홀로 공부하다 라흐마니노프 3번 곡을 연주하고 병을 얻었을 때도 아버지는 찾아오지 않았다. 데이비드가 아버지와 재회하는 순간은 레스토랑 2층에서 이루어진다. 레스토랑에서 연주자로 지내는 데이비드를 다시 찾은 피터는 또다시 자기 아들에게 묻는다. '바이올린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니?' '아니오. 몰라요.' 이 대답을 듣고 피터는 홀로서기에 성공한 데이비드를 온전히 보게 되고 슬픔과 자랑스러움 쓸쓸함을 들어내며 돌아서 레스토랑을 떠난다. 데이비드는 가족의 품을 스스로 떠나 불안했고 위태로웠다. 연주하다 병까지 얻었다. 그럼에도 자신을 들어내는 데 성공해 아내와 더불어 자신을 받아주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끝내는 다시 피아니스트로서 삶을 이어가게 되었다. 더욱 성장한 피아니스트로서 많은 사람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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