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마니 (지브리 스튜디오,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 2015년 6월 5일(미국) |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 전체관람가 | 스튜디오 지브리 |


 반갑습니다오늘 제 삶에 중요한 영화를 보고 왔습니다. '추억의 마니사실상 지브리의 마지막 작품이네요영화에 대해 쓰기 전부터 안구에 습기가 차서 바보 같습니다. 사랑하는 지브리. 따뜻한 색체와 인간적인 캐릭터로 가슴을 녹여주던 영화는 이제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걸까요.

 

 여러분은 운명을 믿나요? 319,  생에 처음으로 운명을 느꼈습니다. 원인과 결과를 따지기 좋아하는 저에게 운명이라면 미지의 섬 소코트라 같은 곳인데, 오늘 그곳에 다녀온 기분입니다대게 영화의 히로인들이 운명에 대해 말하면 공감하기 어려워 미간에 주름을 긋는 사람 중 한 명이 저였던 게 틀림없습니다. 아직도 기분이 묘합니다. 분명 할 일이 있었는데도 발걸음이 영화관으로 가다니 거기엔 20:00 상영 추억의 마니가 있었습니다. 핸드폰을 보니 19:57. 머릿속으로 ', 어서 표를 예매해'라는 환청이 들리는 듯 했어요.


 파란 표지에 하얀 선으로 그려진 토토로가 인사를 건네고 눈에 익은 지브리풍 그림들이 나타나자 미소를 감추기 힘들었습니다. 디지털화된 요즘 시대에도 집적 손으로 그리는 걸 추구하는 지브리의 방식은 한 컷 한 컷에도 대단한 정성이 스며있습니다. 1초 만에 지나가는 풍경에도 그들의 땀이 맺혀 있는 것 같아 왠지 더 감성적으로 변하는 것 같네요. 철저히 자신들의 철학을 지키는 지브리는 성우 또한 전문 성우가 아니라 캐릭터에 목소리를 입히는 일을 전혀 해보지 않았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본 후 녹음을 합니다. 매번 이렇게 하면 예산도 많이 필요하고 여러 불편한 점들이 많을 텐데도 그들은 영상의 생생한 색감을 더하기 위한 연기를 위한 목소리가 아니라 진짜 목소리를 찾는 일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잡이야기가 많은 건 이 글이 저에게 무척이나 특별하기 때문입니다. 중학생 때 우연히 접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후로 모든 지브리 영화를 챙겨봤던(단편, 그 외 지브리 협력했던 작품까지도) 제가 그들의 마지막 영화에서야 리뷰를 쓰게 될지 몰랐습니다. 지브리의 영화는 전부 사랑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처음 놀라운 세계를 접하게 해주었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인데 전 지브리의 마지막 작품 '추억의 마니'에서야 리뷰를 쓰게 되었네요. 할 일을 뒤로 미루다 보면 끝이 온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지브리 영상은 언제나 별 5개를 놓치기 힘든 위치에 있죠. 남은 건 이야기뿐인데 미야자키 하야오의 뒤를 이을 곤도 요시후미가 죽은 후 그것이 잘 안 되고 있는 게 현 지브리의 실정입니다. 결국, 연달은 흥행 실패로 스튜디오가 문을 닿게 됩니다. 사요나라 지브리.영화는 하나의 완성된 세계입니다. 자신과 다른 또 하나의 세계를 탐미하기 위해 사람들은 영화에 빠져들죠. 아름다운 영상만을 위해 지브리 영화 선택하는 사람은 드물 겁니다. 스크린에 빠져드는 건 그들의 세계를 보기 위해서죠. 이 말을 하는 건 안타깝고 슬프지만, 이번 '추억의 마니'도 이야기 면에선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안나가 꿈과 공상, 현실을 이동하며 진행하는 이번 이야기는 자칫 애매하고 혼란스럽게 받아드리기 쉽습니다. 관객을 이리저리 흔들어 놓더라도 돌아올 구심점과 진행 방향을 알게끔 확실한 표지판을 세워두어야 했던 걸 지브리가 잃은 것 같습니다. 어릴 적 부모님을 잃고 양부모님과의 관계에 고민하는 안나가, 처음에는 흔한 사춘기 소녀의 히스테리인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상실의 상처에 울고 있는 안나는 (원인 모를) 불만 가득한 사춘기 소녀가 되어버렸고 그런 안나를 치료해주는 마니 영혼도 크게 빛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달빛 아래 아름다운 소녀 그 이상도 이하도) 사람의 마음마저 치료해준 나이팅게일과도 같은 아름다움이 마니에게 있었는데 히로인의 매력을 매장해버리다니, 엄청난 실수였던 것 같습니다.

 

 결국, 그렇게 앞도 보기 힘든 안갯속을 헤매다가 이야기의 종착점에 도달해서야 지브리가 '추억의 마니'로 통해 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깨닫게 됩니다. 마니의 정체에 눈물이 나온 건 사실이지만 원래 받아야 할 감동은 이 정도가 아니라는 것을 깊이 체감합니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의 감동이 절감 된다는 점은 정말 아쉽습니다. 놀라움과 안타까운 마음이 썩여 엔딩 크레딧이 지금 듣고 계신 노래와 나왔습니다. 이런 멋진 이야기를 이렇게 진행하다니...

그럼에도 추억의 마니는 놓칠 수 없는 작품입니다. 큰 상실에 마음을 다친 소녀가 시공을 넘어온 사랑을 받아 치료 되는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비록 구심점을 잡지 못한 채 비틀거리긴 했지만 영화 곳곳에서 터널을 지나는 듯한 느낌이 살아있었습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그 터널입니다. 이야기가 시작되려는 사건의 도입부, 어떤 세계가 펼쳐질까 하는 두근거림과 긴장감이 '추억의 마니' 곳곳에서 스며 있습니다. 단 그뿐이었지만 비()하야오 작품으로 이런 두근거림을 만들 수 있게 된 건 지브리의 큰 도약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명 앞으로 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여지가 보입니다. 그래서 이젠 끝나버렸다는 게 더 안타깝고 슬프게 느껴지는 걸까요.아이와 함께 볼만한 영화는 아닙니다. 누군가와 함께 볼 영화도 아닌 것 같습니다. 될 수 있으면 꺼려지더라도 혼자 영화관에 가서 보는 걸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가을에 열린 추모식에 다녀온다는 마음으로 지브리의 마지막 영화를 감상하시면 좋으실 것 같습니다. 사요나라 지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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